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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대서양 조약 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는 북대서양조약에 근거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아메리카(미국·캐나다) 및 유럽 국가들이 결성한 군사동맹이다. 

30개국이 가맹하였고, 비 NATO 동맹국인 한국 등과도 협력 관계에 있으며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다.


1. 역사


- 설립 경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유럽을 영향권에 둔 공산주의 소비에트연방과의 냉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영국과 미국이 주체가 되어 1949년 4월 4일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에 의해 탄생했다.


결성 초기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에 대항하기 위한 서방 진영의 다국적 군사동맹으로, [미국을 끌어들여 러시아를 축출하고 독일을 억압한다(반공주의와 봉쇄)]라는 초대 사무총장 헤이스팅스 이스메이[각주:1]의 말이 상징하듯이, 유럽을 오랜 세월에 걸쳐 고민하게 만들었던 독일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이기도 했다. 


가맹국은 집단적 안전보장체제 구축에 더하여, 역내 어느 한 나라가 공격받을 경우, 공동으로 응전·참전하는 집단 자위권 발동의 의무를 지고 있다.


당초에는 미국 등의 일부에서 독일의 철저한 탈공업화·비(非)나치화가 구상되었다. 또한, 연합군 점령하에서는 독일은 무장해제되어 소규모 국경 경비대나 기뢰 소해정 부대 이외의 국군을 두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4개국이 치안에 책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개시와 함께 서독 경제의 부흥이 요구되었고, 주권 회복 후인 1950년에는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의 재군비 검토도 해금되었다. 서독은 새로운 독일 연방군 창설과 NATO 가입을 준비했으나 프랑스 등은 독일 재군비와 NATO 가입에 반대하며 유럽방위공동체 구상으로 맞섰다. 이 구상은 1952년 서독을 포함한 서방 각국 간에 조인되었으나 드골주의자[각주:2]들의 반대로 프랑스 의회에서 부결되어 비준에 이르진 못했다.


그 결과, 프랑스도 독일 재군비를 인정하면서 독일 연방군이 1955년 11월 12일 탄생했고 서독은 NATO에 가입했다. 한편, 이 사태를 두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 8개국은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하여 바르샤바 조약 기구(Warsaw Pact)를 발족한다. 이로써 유럽은 소수 중립국을 제외하고 두 개의 군사동맹으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1949년부터 1954년까지 벨기에의 정치가 폴 판 젤란트[각주:3]가 벨기에 정부와 NATO 양측의 경제고문을 지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을 통해 서구 국가들은 NATO의 틀에 의해서 미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이는 서유럽 국가들이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와 1960년대 주요 식민지 독립으로 인한 제국주의의 붕괴로 서방국가들은 크게 약화하였기에, 각국은 미국의 핵 억지력과 막강한 재래식 무력에 의한 실질적인 비호 아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길을 가고자 했다.


동구권과의 직접 전쟁을 위해 미국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서유럽 국가에 속속 배치되었고, 미국산 무기가 각국에 공급되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프랑스는 미·영과 외교적 보조가 어긋나 독자 전략 노선을 단행, 1966년에 군사 기구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1967년 NATO 본부가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브뤼셀로 이전하였다.


한편, 전투기 등 항공무기 분야에서는 개발비 증대와 함께 유럽 각국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일이 늘어났는데 이것도 NATO 동맹의 틀이 이바지했다. 항공제조업체 에어버스의 탄생도 NATO 틀에 따라 서구의 일원이 된 서독과 프랑스의 밀월관계가 낳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유럽은 미국의 비호를 이용함으로써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데 성공했으며, 냉전의 이름처럼 유럽을 무대로 한 세 번째 대전은 끝까지 막을 수 있었다. 



- 냉전 종식 후와 동방으로의 확대: 1989년 몰타회담에서 냉전이 종식되었고, 이어진 동유럽 혁명과 1991년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해체, 소련 붕괴로 NATO는 큰 전환기를 맞아 새롭게 존재 의의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1991년에 [신전략 개념]을 책정하여 위협 대상으로 역외 지역에서의 분쟁 예방 및 위기관리(비5조 임무)에 중점을 옮겼다. 또, 역외분쟁에 대응하는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동유럽 국가들과 군사·안보를 협의하는 북대서양협력위원회(NACC)를 출범시켰다.


1992년에 발발한 보스니아 전쟁에서는 처음으로 이 항목이 적용되었고, 1995년부터 군사적 개입과 국제 연합을 통한 정전 감시에 참여했다. 이어서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는 세르비아에 대해 NATO 최초의 군사행동이 된 폭격을 시행하면서 미국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었다.


한편, 소련의 붕괴로 소련 영향권에 놓였던 동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NATO 및 유럽연합(EU) 가입을 신청하면서 서방세계의 외교적 승리를 과시하였으나 확대 문제도 따라서 발생했다.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소련의 지배를 피해 NATO 가맹을 희망하는 한편, 소련 붕괴로부터 탄생한 러시아 연방은 국력을 회복함과 동시에 NATO의 동방 확대에 경계·반발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fP)]에 의해 동유럽과의 군사 협력 관계가 진전되었고, 1999년에 3개국[각주:4], 2004년에 7개국[각주:5], 2009년에 2개국[각주:6]이 가맹,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는 2017년에 몬테네그로,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뒤를 이었다. 이렇게 하여서 구 바르샤바 조약 기구 회원국으로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NATO로 들어갔다.


러시아가 크림 위기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 등에서 보듯,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위협과 도발을 강화하고 있으므로 다른 나라들도 NATO 가입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 예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NATO 가입을 희망하는 나라로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도 NATO 가입을 요구하는 여론이 대두하고 있으며, 양국은 NATO의 군사 훈련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 대테러 전쟁: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9.11 테러 사건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 10월 2일 북대서양조약 제5조를 발동하여 공동 조직으로서는 행동하지 않았지만, 탈레반 정부를 축출하기 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 본토 방공, 영공 통과 허가 등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침공 때는 프랑스와 독일이 강경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엇박자를 냈고, 미국을 추종하는 폴란드 등 동유럽의 새 회원국과 독일, 프랑스 등 구 회원국으로 내부 분열됐다.


2005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행동에 관한 권한 일부가 이라크 전쟁으로 피폐해진 미군으로부터 NATO에 이양되면서 NATO군은 최초로 지상군에 의한 작전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6년 7월에는 아프간에서의 권한을 모두 이양받아 NATO 가맹국 이외를 포함한 다국적군인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이끌게 되었다.


- 미·러 신냉전: 2000년대 후반 들어서 미국이 추진하는 동유럽 미사일 방어 문제와 러시아의 이웃인 조지아,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목표로 하는 데 대하여, 경제가 부흥하면서 푸틴 정부로 초강대국으로의 회귀를 갈망하던 러시아는 강력한 반발을 드러냈다. 그 목적으로 2008년 8월 그루지야 분쟁이 발발하면서 NATO 러시아의 관계는 험악해졌고 이를 [신냉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러시아는 2002년에 설치된 NATO 러시아 이사회에 의해 준회원국 존재였지만, 2008년 8월의 시점에서는 NATO와의 관계 단절도 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3월에 다시 관계를 복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조지아의 NATO 가입은 단호히 저지할 태세였고 블라디미르 푸틴[각주:7] 러시아 총리는 만약 2008년의 NATO-러시아 서밋에서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경우, 러시아는 러시아계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 반도를 병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할 용의가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푸틴의 말대로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정권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크림 반도 및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2017년, NATO 불필요론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각주:8]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미국과 그 이외의 군사비 부담의 격차에 불만을 숨기지 않게 되었으며, 2017년 7월에는 트럼프가 NATO 총장과의 조찬 모임에서 독일 등에 대해 군사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음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전개하면서 [이런 부적절한 것에 참을 생각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등, 미국의 관여를 축소할 의향을 나타내고 있다.


2. 개입한 분쟁


- NATO가 지금까지 개입한 것은 [보스니아 전쟁], [코소보 전쟁], [마케도니아 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리비아 내전]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에서는 2011년 3월 17일, 리비아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유엔 안보리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973호]가 채택되었음에도 3월 19일부터 NATO군이 공습을 개시, 반체제 파인 리비아 과도국가평의회를 지원하면서 리비아가 붕괴하는 최대의 요인이 되었다.


3. 가맹국(2020년 기준)


- 1949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아이슬란드

- 1952년: 그리스, 터키

- 1955년: 독일

- 1982년: 스페인

- 1999년: 체코, 헝가리, 폴란드

- 2004년: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 2009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 2017년: 몬테네그로

- 2020년: 북마케도니아


- 주요 비NATO 동맹국: 대한민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 이집트(1989년), 요르단(1996년), 뉴질랜드(1997년), 아르헨티나(1998년), 바레인(2002년), 필리핀, 타이완, 태국(2003년), 쿠웨이트, 모로코, 파키스탄(2004년), 아프가니스탄(2012년), 튀니지(2015년), 브라질(2019년)




4. 조직구성


- NATO에는 초국가적인 중앙기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맹주는 각 가맹국 각자의 정부가 평등한 권리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앙기관이며 가맹국의 정부대표가 참가하는 북대서양이사회(NAC)에서 모든 의안이 [전원일치]에 의해 승인·결정되고 있으며, 다수결 제도는 채용되어 있지 않다.


이사회에서는 NATO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협의가 이뤄져 각 가맹국 대표에 의해서 주 1회 행해지는 상설 이사회와 관례상 연 2회 행해지는 외무·국방장관 등 각료급의 이사회, 또한 임시로 행해지는 수뇌 간 회합 등에 의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이 석상에서 NATO 사무총장은 이사회가 실시하는 각종 회의의 의장으로서의 직책을 맡고 사무총국은 그 보좌를 한다.


또, 한때 프랑스가 NATO 탈퇴 및 그 이유로 언급된 [미국 주도의 군사계획 진행]이라는 사유로부터 특히 군사관계 의사결정은 이사회가 아닌 각국 국방 장관으로 구성된 [방위계획위원회]에 의해 이뤄진다. 또한, 핵 문제에 관해서는 [핵 프로그램 그룹]도 존재하고 있으며 핵 관련 항목에 관해서는 이사회와 동등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이들 이사회·방위계획위원회 아래에는 이 두 조직을 지원하기 위한 상설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임시 위원회도 설치할 수 있다.


군사기구에 관해서는 군사위원회가 이사회와 방위계획위원회의 결정 아래 NATO군의 각급 사령부를 통제한다. 군사위원회는 임기제 위원장과 각 회원국 군의 참모총장급 장성들로 구성되어있으며, 하부조직으로 회원국 대장·중장으로 구성되는 [상설군사대표위원회], 각국 파견 참모들로 구성된 [국제참모부]를 설치하였다.


*자세한 조직구성 및 나토에 대한 정보는 이곳을 참고하자. 




  1. Hastings Ismay, 1st Baron Ismay, 1887~1965 [본문으로]
  2. 프랑스의 외세로부터의 독립 [본문으로]
  3. Paul van Zeeland, 1893~1973 [본문으로]
  4. 폴란드, 체코, 헝가리 [본문으로]
  5.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본문으로]
  6.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본문으로]
  7.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1952~ [본문으로]
  8. Donald John Trump, 194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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